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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레비스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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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프랑스 인류학자이자 철학자로,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파리 대학교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교 사회학 교수를 거쳐,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으로 망명하여 구조주의 언어학, 인류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친족의 기본 구조》, 《슬픈 열대》, 《구조 인류학》, 《야생의 사고》, 《신화학》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문화와 신화를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레비스트로스는 1973년 에라스무스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으며, 10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사상은 한국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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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기본 정보
2005년의 레비스트로스
레비스트로스 (2005년)
이름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로마자 표기Claude Lévi-Strauss
출생일1908년 11월 28일
출생지벨기에 브뤼셀
사망일2009년 10월 30일
사망지프랑스 파리
국적프랑스
배우자디나 드레퓌스 (1932년 결혼, 이혼)
로즈 마리 울모 (1946년 결혼, 1954년 이혼)
모니크 로망 (1954년 결혼)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서명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서명
교육
학교파리 대학교 (DrE, 1948년)
기관고등연구실천원 (후에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콜레주 드 프랑스
학문적 배경
학파구조주의
주요 관심사인류학
사회
언어학
친족
주요 사상구조주의
신화학
신화에 대한 구조주의 이론
요리 삼각형
브리콜라주
미템
동맹 이론
부동 기표
영향루이스 헨리 모건
페르디낭 드 소쉬르
로만 야콥슨
프란츠 보아스
에밀 뒤르켐
카를 마르크스
앨프리드 래드클리프 브라운
마르셀 모스
장자크 루소
앙리 베르그송
영향을 준 인물피에르 부르디외
에드먼드 리치
카트린 클레망
필리프 데스콜라
자크 라캉
장폴 사르트르
롤랑 바르트
루이 알튀세르
자크 데리다
들뢰즈와 가타리
철학적 배경
학파대륙 철학
프랑스 현대 사상
프랑스 사회학파
구조주의
주요 관심사철학
사회 인류학, 문화인류학, 민족학, 아메리카 원주민, 친족 관계
신화학
윤리학
언어 철학
주요 사상이항 대립
제한 교환
일반 교환
상호성
구조
구조 변환
영향페르디낭 드 소쉬르
로만 야콥슨
프란츠 보아스
마르셀 모스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
장자크 루소
카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
모리스 메를로퐁티
지그문트 프로이트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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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아제
장 보드리야르
피에르 부르디외
루이 알튀세르
에드먼드 리치
롤랑 바르트
슬라보예 지젝
움베르토 에코
프레드릭 제임슨
마르셀 드티엔
장피에르 베르낭
나카자와 신이치

2. 생애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대인프랑스인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프랑스 국적을 가진 유대인이었고, 부친은 인상파 화가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부친은 징병되었고, 레비스트로스는 랍비인 외할아버지 댁에서 살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마르크스주의를 배웠으며, 파리대학교소르본 대학교에서 법학철학을 공부했다. 대학생 시절 심리학, 정신분석학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장 자크 루소를 공부하기도 했다.[68]

1934년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록펠러 재단의 유럽학자 구명계획으로 미국에 초청되었고, 1940년대 뉴욕시 사회연구학교 객원 교수를 지냈다. 1950년에서 1974년까지 파리대학교 민족학연구소장을 지냈다.[69] 미국 망명시기에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손, 인류학프란츠 보아스 등과 만나 구조언어학에 흥미를 보였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에 돌아가 미국에 문정관 자격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미국공립도서관 자료들을 읽고 논문 《친족의 기본구조》를 썼다.(1945-1948년).[70]

1958년 콜레주 드 프랑스 인류학과 정교수가 되었다. 1967년 몬트리올 세계 박람회에서 에드몽 자베스,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와 함께 프랑스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1981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초청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했다.[71]

2009년 10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2. 1. 어린 시절과 교육 (1908-1934)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대인프랑스인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프랑스 국적을 가진 유대인이었고, 부친은 인상파 화가였다. 부친의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아 포목공예, 가구공예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부친은 징병되었고, 레비스트로스는 유대교 랍비인 외할아버지 댁에서 살았다.[9][13][14]

고등학생 때부터 마르크스주의를 배웠으며, 마르크와 칸트의 작품을 포함한 철학을 접하며 좌파 정치 성향을 갖게 되었다.[17] 파리대학교 법학부와 소르본대학교에서 법학철학을 공부했다. 대학생 시절 심리학, 정신분석학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루소를 공부하기도 했다.[68] 1926년 파리대학교(소르본)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사회주의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

1931년 아그레가시옹(철학 교수 자격 시험)에 합격하여 22세의 나이로 동기 중 3위를 차지했다. 대공황이 프랑스를 강타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를 부양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17] 교수 자격 취득 후, 2개의 리세(프랑스의 중등 교육 기관)에서 철학 교사로 일했다. 이 시기에는 자격 시험 때문에 중단했던 정치 활동을 재개하여, 벨기에 출신 사회주의 이론가 헨드리크 드 만(앙리 드 만)의 파리 강연을 기획하거나 부임지의 지방 의회에 출마를 계획하는 등 활동을 했다.

2. 2. 브라질에서의 경험 (1935-1939)

1935년, 몇 년간 중등학교 교사로 일한 후, 그는 브라질로 파견되는 프랑스 문화 사절단에 합류하여 상파울루 대학교에서 사회학 방문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아내인 디나 레비-스트로스(Dina Lévi-Strauss)는 같은 대학교에서 민족학을 강의했다.[57]

부부는 1935년부터 1939년까지 브라질에서 생활하며 인류학 연구를 수행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마투그로수와 아마존 열대우림으로 연구 조사를 떠났다. 처음에는 과이쿠루족과 보로로족 원주민 부족을 연구했고,[57] 1938년에는 남비크와라족과 투피-카와이브족 사회를 연구하기 위해 6개월 이상 탐사를 진행했다. 이때 그의 아내는 안구 감염으로 연구를 완료할 수 없게 되어, 그가 연구를 마무리했다. 이 경험은 레비-스트로스의 직업적 정체성을 인류학자로 확립시켰다.[57]

2년간의 대학교수 생활 동안에는 주로 대학 휴가를 이용하여 현지 조사를 실시했고, 장기 휴가 때는 파라과이와의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카디웨우족이나 브라질 내륙 마투그로수 지방에 거주하는 보로로족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57]

2. 3. 망명과 구조주의의 형성 (1940-1948)

1934년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유대인 박해를 피해서 미국으로 망명했다.[69] 록펠러 재단에서 추진한 유럽학자 구명계획 덕분에 미국으로 초청되는 형식이었다. 1940년대에 뉴욕시 사회연구학교 객원 교수를 지냈으며, 1950년에서 1974년까지 파리대학교의 민족학연구소장을 지냈다.[69] 미국 망명시기에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손, 인류학프란츠 보아스 등과 만나 구조언어학에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에 돌아간 레비스트로스는 미국에 문정관 자격으로 돌아왔으며, 미국공립도서관의 자료들을 읽음으로써 논문 《친족의 기본구조》를 썼다.(1945년-1948년).[70]

1939년 프랑스로 돌아와 전쟁에 참여했으며, 마지노선 연락 장교로 배치되었다. 1940년 프랑스 항복 후에는 몽펠리에의 리세(lycée)에서 근무했지만, 비시 정권의 인종 차별 법에 따라 해고되었다.[18][19] 그 무렵 그는 첫 번째 아내와 별거했다. 아내는 프랑스에 남아 프랑스 레지스탕스에서 활동했고, 그는 배를 타고 비시 프랑스를 탈출하여 마르티니크로 갔다.[20]

1941년 뉴욕시의 뉴스쿨에서 일자리를 제안받고 미국 입국이 허가되었다. 일련의 여정을 통해 남아메리카를 거쳐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했는데, 그의 수하물에서 발견된 독일 편지가 세관 직원들의 의심을 불러일으켜 FBI의 조사를 받았다. 레비스트로스는 전쟁 대부분을 뉴욕시에서 보냈다. 자크 마리탱, 앙리 포시용, 로만 야콥손과 함께 프랑스 학자들을 위한 일종의 망명 대학교인 에콜 리브르 데 ôt 에튀드의 창립 멤버였다.

뉴욕에서 보낸 전쟁 시절은 여러모로 레비스트로스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야콥손과의 관계는 그의 이론적 관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22] 또한 레비스트로스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강의한 프란츠 보아스가 주창한 미국 인류학에 접하게 되었다. 1942년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회관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보아스는 레비스트로스의 품에서 사망했다.[23] 보아스와의 밀접한 관계는 그의 초기 연구에 독특한 미국적 경향을 부여하여 미국에서 그의 연구가 받아들여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46년부터 1947년까지 워싱턴 D.C.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문화 참사관으로 짧게 근무한 후, 1948년 파리로 돌아왔다. 이때 그는 "주 논문"과 "부 논문" 두 편의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하여 소르본 대학교에서 국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들은 La vie familiale et sociale des indiens Nambikwara프랑스어 (남비콰라 인디언의 가족 및 사회 생활)과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프랑스어 (친족의 기본 구조)였다.[24]

2. 4. 귀국과 학문적 성취 (1949-1973)

1948년경에 완성된 《친족의 기본구조》(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를 가지고 프랑스로 귀국한다. 1949년 《친족의 기본구조》는 논문 심사를 통과하여 프랑스에서 출판된다. 신화학자 조르주 뒤메질(Georges Dumézil)의 소개로 고등연구실습원(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에서 일자리를 얻어, 미개 사회의 종교에 관한 세미나를 담당한다. 이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인류학 강좌 설립과 함께 이 세미나가 발전적으로 해소될 때까지 담당한다.[61] 이 기간 동안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저서집 《사회학과 인류학》(Sociologie et anthropologie)의 편집에 참여하고, "떠도는 의미항(signifiant flottant)" 개념 등을 제시하면서 모스를 자신의 구조 인류학의 선구자로 재해석하는 장대한 서문을 집필하는 등, 자신의 방법론인 구조 인류학을 일종의 프랑스 사회학파의 계승자로 인식시키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1951년1952년 두 차례에 걸쳐 콜레주 교수 선거에 입후보하지만, 학파 간의 다툼으로 낙선한다. 1958년 세 번째 입후보까지 자신의 방법론을 제목으로 한 최초의 논문집 《구조 인류학》(Anthropologie structurale, 1958년)에 수록될 민족학·사회인류학 관련 논문들을 집필하고 연구 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유네스코(UNESCO)의 반인종주의 캠페인을 위한 소책자 《인종과 역사》(Race et Histoire, 1952년)를 집필하기도 했다.[62]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와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공동으로 편집했던 논단지 《탕 모데른(Les Temps modernes, 현대)》지에서도 "화형당하는 산타클로스"를 비롯한 다양한 논고를 발표했으며, 1955년 자전적인 색채를 띤 민족지 스타일의 저서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를 출판하여 센세이셔널한 평가를 얻는다. 《기본 구조》로 학계 내에서 유명했던 그의 이름은 순식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세 번째 입후보에서, 절친한 哲学者인 메를로-퐁티의 도움을 비롯하여[63], 뒤메질과 에밀 벤베니스트(Émile Benveniste) 등의 지원을 받아 1959년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교수로 선출된다.[64] 이 선출로 그가 담당하게 된 강좌는 신설된 사회인류학 강좌였으며, 콜레주 드 프랑스에 인류학 관련 강좌가 설치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또한 이 사회인류학 강좌의 설립과 전후하여, 인류학을 위한 학술지 《L'Homme(인간)》이 그의 제안으로 언어학자 벤베니스트와 선사학자 앙드레 르와-귀앙(André Leroi-Gourhan), 그리고 지리학자 피에르 구르(Pierre Gourou) 등을 편집 동인으로 하여 발간된다. 그 전까지 프랑스에는 없었던, 대영제국의 《왕립인류학협회지(Journal of the Royal Anthropological Institute)》, 《맨(Man)》지, 미국인류학회의 학회지 《아메리칸 안스로폴로지스트(American Anthropologist)》와 같은 인류학 전문지의 창간은, 앞서 언급한 사회인류학 강좌와 더불어 프랑스 인류학 연구의 중심축 중 하나를 형성하고, 그는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는 동시에 이 연구 그룹에 지도적 위치로 참여하게 된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취임 전후로 레비스트로스의 연구 활동 중심은, 근거지로서는 콜레주에서 매년 하는 강의에, 주제로서는 고등연구실습원 세미나 담당 이래 계속 해 온 미개 사회의 종교 연구, 특히 미개 사회 신화 연구로 옮겨갔다. 파리 인류학 박물관과 고등연구실습원의 인류학 관련 부문과 연계하여 세미나를 운영하면서 연구 활동을 해나갔다. 이후 1984년 콜레주 퇴임까지 출판된 저서들은 모두(그리고 1969년도 강의를 바탕으로 1992년에 출판된 《大山猫の物語》(다이센네코노모노가타리)) 먼저 강의에서 구상이 다듬어지고, 청강자와의 논의를 거친 후 저서로 출판된 것이다.

1962년에는 전년도 강의 「오늘날의 토테미즘과 야생의 사고」를 바탕으로 토테미즘이라는 인류학적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종래의 용법을 철저히 해체한 《오늘날의 토테미즘》(今日のトーテミスム), 그리고 그 해체 작업을 거쳐 미개적 분류론이 지닌 어떤 종류의 합리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인종과 역사》(人種と歴史)에서 도발적으로 제시한 "차가운 사회"와 "뜨거운 사회"라는 관념적 대비를 염두에 두고, 차가운 사회에서의 사회상의 산출과 그 질서 유지의 메커니즘을 현대 사회에도 남아있는 여러 요소와 관통하는 형태로 예증한 《야생의 사고》(野生の思考)가 발표되었다.

2. 5. 말년과 죽음 (1973-2009)

1973년 에라스무스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프랑스 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66]

국제교류기금의 초청으로 1977년 10월부터 11월까지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고, 이후 1986년 4월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하여 강연, 심포지엄 및 일본 학자들과 교류를 가졌다. 일본 문화를 높이 평가하는 친일파이며, 1993년 봄 외국인 훈장으로 훈이등 욱일중광장이 수여되었다.

1993년 4월 14일-15일, NHK 교육텔레비전 「ETV 스페셜」에서 제자 가와다 준조의 롱 인터뷰 "제1회 자연·인간·구조", "제2회 일본에 대한 시선"을 방영했다.

대한민국에는 1981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초청을 받아 방문했다.[71]

2008년 11월 28일 100세 생일을 맞이하여 프랑스에서는 기념 행사가 열렸고,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인문사회과학자를 대상으로 하는 "레비-스트로스상"의 신설을 발표했다. 그는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서 100세를 맞이한 최초의 인물이자, 그의 작품이 플레이아드 문고에 출판된 몇 안 되는 현존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2009년 4월 14일 모리스 드뤼옹이 사망하면서 그는 아카데미의 최고참 회원이 되었다.

2009년 10월 30일 심야, 프랑스 동부 리뉴롤 마을의 별장에서 사망했다. 유언에 따라 친족에 의한 비밀 장례를 치른 후 11월 3일에 대리인이기도 한 출판사가 공표했다.[3]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그를 "역대 가장 위대한 민족학자 중 한 명"이라고 묘사했다.[25]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레비스트로스가 "역사와 인류에 대한 민족 중심적인 시각을 깨뜨렸다"고 말했다.[26]

3. 주요 이론 및 사상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문화는 없다고 주장하며 서구중심주의와 인종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원주민의 식인 풍습도 종교적 문화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오히려 서구 근대 문명의 대규모 학살과 전쟁을 비판했다. 그는 사회 관계나 사회적 행위가 남자와 여자, 인간과 동물 등과 같은 개념적 대립쌍에 의해 구조화된다고 보았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보편적 규칙을 찾고자 했다. 그는 원시 사회의 '신화'에 주목했는데, 신화는 사회의 해결되지 않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려는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즉,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불안을 줄이기 위한 도구이자 결과물이라고 보았다.[72]

레비스트로스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 에밀 뒤르켐마르셀 모스의 사회학, 마르크스주의, 지질학, 클래식 음악, 초현실주의 등 당대 아방가르드 예술 사조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미개 사회의 혼인 규칙 체계를 선물이나 기호학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1949년 박사 논문인 『친족의 기본 구조』에서 자신의 기본적인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 "구조"에 군론을 사용한 수리적인 해석은 수학자 앙드레 베이유가 제공했다.

1951년과 1952년 콜레주 교수 선거에 입후보했지만 낙선했다. 1958년 세 번째 입후보까지 논문집 『구조 인류학』(1958년)에 수록될 논문들을 집필했고, 유네스코(UNESCO)의 반인종주의 소책자 『인종과 역사』(1952년)를 집필했다.[62]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장-폴 사르트르의 논단지 『탕 모데른』에 "화형당하는 산타클로스" 등의 논고를 발표했고, 1955년 『슬픈 열대』를 출판하여 평가를 얻었다.

1959년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의 지원을 받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선출된다.[63][64] 그는 인류학 학술지 『L'Homme(인간)』을 발간하는데 에밀 벤베니스트, 앙드레 르와-귀앙, 피에르 구르 등이 편집 동인으로 참여했다.

3. 1. 구조주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인류학에 적용하고, 에밀 뒤르켐마르셀 모스의 사회학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구조주의 인류학을 발전시켰다.[33] 그는 문화를 기호적 의사소통 체계로 보고, 음운론적 분석 방법을 통해 사회 현상을 연구했다. 특히, 친족 관계와 신화 분석에 주력했다.

1955년 저서 《슬픈 열대》를 출간하여 프랑스 대표 지식인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이 책은 1930년대 프랑스 이민자로서의 시간과 여행을 상세히 기술한 회고록으로, 아름다운 산문, 철학적 사색, 아마존 원주민에 대한 민족지학적 분석을 결합한 걸작이다.

1959년 프랑스 공과대학(Collège de France) 사회인류학 교수직에 임명된 후, 에세이 모음집 《구조 인류학》을 출판했다. 그는 사회인류학 연구소와 학술지 《인류》(l'Homme)를 설립하여 프랑스 인류학을 학문으로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인간 사고의 보편적인 구조를 밝히는 데 기여했다. 특히, "차가운 사회"와 "뜨거운 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 변화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3. 1. 1. 친족 구조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인류학에 적용하려 한 레비-스트로스는 당시 가족을 남편, 아내, 자녀로 구성된 자급자족 단위로 보던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그는 인류학의 고전적 견해를 뒤집어 부차적인 가족 구성원(조카, 사촌, 고모, 삼촌, 조부모 등)을 먼저 제시하고, 단위 자체가 아닌 단위 간의 관계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4]

레비-스트로스의 친족 이론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이 경우 D는 긍정적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부족 간 결혼을 통한 정체성 형성을 분석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삼촌과 조카의 관계가 형제와 자매의 관계와 같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같다고 지적했다.[35] 즉, A는 B와 같고 C는 D와 같은 관계(A=B, C=D)에서 A, B, C를 알면 D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삼촌-조카 관계)가 긍정적, B(형제-자매 관계)가 부정적, C(아버지-아들 관계)가 부정적이면 D(남편-아내 관계)는 긍정적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은 경험적 자료를 단위 간의 일반화되고 이해 가능한 관계로 단순화하여 예측 법칙을 식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34]

레비-스트로스는 문화를 기호적 의사소통 체계로 간주하고, 음운론적 분석 방법을 통해 친족 체계를 연구했다. 그는 친족의 기본 단위를 형제, 자매, 아버지, 아들의 네 가지 역할로 구성된 클러스터로 보았다. 이들은 근친상간 금기가 있는 모든 사회에서 자신의 세습 계보 외부의 남자로부터 아내를 얻어야 하는 역할이다. 예를 들어, 형제는 자매를 내주고, 그의 아들은 다음 세대에 자신의 자매가 외혼을 통해 결혼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보답할 수 있다. 이러한 여성의 지속적인 순환은 다양한 씨족 간의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저서, 『친족의 기본 구조』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3. 1. 2. 신화 분석

그는 인간의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보편적 규칙을 찾는 데 노력했다. 원시사회를 통해 보편적 규칙을 탐구하던 그는 원시사회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신화'에 주목했다. 이때 신화란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을 상상적으로 해결하려는 이야기'이다. 이는 인간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해결된 것처럼 옮김으로써 그 문제에 대한 불안을 줄이려 했다는 것이다. 그가 본 신화는 불안 해소를 위한 도구이자,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72]

1962년 레비스트로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여겨지는 La Pensée Sauvage프랑스어를 출판했는데, 이는 영어로 ''야생의 사고방식''(그리고 나중에는 ''야생의 사유'')로 번역되었다. La Pensée Sauvage프랑스어의 프랑스어판에는 종종 표지에 야생 팬지 이미지가 인쇄되어 있다.

''야생의 사고방식''은 이전 인류학자들이 정의한 "원시적인" 사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사고 형태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책의 전반부는 레비스트로스의 문화 이론과 정신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후반부는 이러한 설명을 역사와 사회 변화 이론으로 확장한다. 책의 후반부는 인간의 자유의 본질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와 장-폴 사르트르 사이의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한편,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대로 행동할 자유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게 했다. 다른 한편으로 사르트르는 좌파 정치에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개인이 권력자들이 부과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제약받는다는 생각에 헌신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사르트르에 반대하여 구조주의적 행위자 개념을 제시했다. 구조주의와 실존주의 사이의 이러한 논쟁의 반향은 결국 피에르 부르디외와 같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세계적인 명사가 된 레비스트로스는 1960년대 후반에 그의 대표작인 4권짜리 연구서, 『신화학(Mythologiques)』을 집필하는 데 힘썼다. 이 책에서 그는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단일 신화를 추적하여 중앙아메리카를 거쳐 북쪽으로 북극권에 이르기까지 각 집단의 변형된 형태를 따라가면서 서반구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신화의 문화적 진화 과정을 추적했다. 그는 전형적인 구조주의적 방식으로, 이야기 자체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이야기 요소들 간의 기저 구조적 관계를 조사했다. 『야생의 사유(Pensée Sauvage)』가 레비스트로스의 거대 담론 이론을 담은 선언이었다면, 『신화학(Mythologiques)』은 4권에 걸친 분석의 확장된 사례였다. 풍부한 세부 사항과 엄청난 분량으로 인해, 비록 레비스트로스의 대표작이기는 하지만 훨씬 더 짧고 접근하기 쉬운 『야생의 사유(Pensée Sauvage)』보다 널리 읽히지는 않는다.

1962년 《야생의 사고》(野生の思考)의 마지막 장 "역사와 변증법"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강렬하게 비판했다. 이로 인해 실존주의에 대립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으로서 구조주의라는 사조가 때로는 과도할 정도로 각광받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후에도 센세이셔널한 유행과는 항상 거리를 두고, 10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평생의 업적으로 자리 잡은 4권에 걸친 《신화론리》(《살아 있는 것과 불에 탄 것》, 《꿀에서 재로》, 《테이블 매너의 기원》, 《벌거벗은 사람》)를 완성하여 신화 연구에 있어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그의 문제의식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라는 주체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서구 사회에서의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에서 출발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주체가 아니라 주체 간의 구조가 중요하다고 주장했고(주체가 사용하는 언어는 공동체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주의적인 것이므로 절대적인 주체는 아니다), 후자에 대해서는 어떤 민족에게도 그 민족 고유의 구조가 있으며, 서구 측의 구조로 다른 구조에 대해 우열을 매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3. 1. 3. 야생의 사고

1962년 레비-스트로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여겨지는 ''La Pensée Sauvage프랑스어''를 출판했는데, 이는 영어로 ''야생의 사고방식''(그리고 나중에는 ''야생의 사유'')로 번역되었다. 프랑스어 제목은 pensée프랑스어라는 단어가 '사고'와 '팬지'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고, sauvage프랑스어는 영어의 'savage'와는 다른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번역하기 어려운 말장난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셰익스피어의 ''햄릿''(4막 5장)에서 오필리아의 연설에서 따온 ''Pansies for Thought''(팬지꽃으로 사색을)라는 영어 제목을 제안했다고 한다. La Pensée Sauvage프랑스어의 프랑스어판에는 종종 표지에 야생 팬지 이미지가 인쇄되어 있다.

''야생의 사고방식''은 이전 인류학자들이 정의한 "원시적인" 사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사고 형태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책의 전반부는 레비-스트로스의 문화 이론과 정신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후반부는 이러한 설명을 역사와 사회 변화 이론으로 확장한다. 책의 후반부는 인간의 자유의 본질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와 장-폴 사르트르 사이의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한편,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대로 행동할 자유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게 했다. 다른 한편으로 사르트르는 좌파 정치에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개인이 권력자들이 부과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제약받는다는 생각에 헌신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사르트르에 반대하여 구조주의적 행위자 개념을 제시했다. 구조주의와 실존주의 사이의 이러한 논쟁의 반향은 결국 피에르 부르디외와 같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The Savage Mind)』에서 브리콜뢰르(Bricoleur)와 엔지니어(Engineer)를 비교 분석했다.

'''브리콜뢰르'''는 고대 프랑스어 동사 ''bricoler''에서 유래했는데, 원래는 구기 종목, 당구, 사냥, 사격, 승마에서의 부차적인 움직임을 가리켰지만, 오늘날에는 가지고 있는 도구와 재료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거나 수리하는 행위, 즉 땜질이나 손질하는 것을 의미한다. 레비스트로스가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진정한 장인과 비교하여 브리콜뢰르는 많은 일에 능숙하고 기존의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여 유한한 재료와 도구에 자신의 프로젝트를 적응시킨다.

'''엔지니어'''는 프로젝트 전체를 다루며, 프로젝트에 맞는 모든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구상하고 조달한다. 브리콜뢰르는 "야생의 사고"에, 엔지니어는 과학적 사고에 가깝다. 레비스트로스는 브리콜뢰르의 세계는 폐쇄적이며, 종종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반면, 엔지니어의 세계는 새로운 도구와 재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개방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둘 다 제약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가므로, 엔지니어도 기존의 이론적, 실용적 지식과 기술적 수단의 집합을 브리콜뢰르와 유사한 방식으로 고려해야 한다.

1962년, 토테미즘이라는 인류학적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종래의 용법을 철저히 해체한 『오늘날의 토테미즘』과 함께, 『야생의 사고』가 발표되었다. 『야생의 사고』는 미개적 분류론이 지닌 합리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인종과 역사』에서 제시한 "차가운 사회"와 "뜨거운 사회"라는 관념적 대비를 염두에 두고, 차가운 사회에서의 사회상 산출과 질서 유지 메커니즘을 현대 사회에도 남아있는 요소와 관통하는 형태로 예증한 책이다.[1]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La pensée sauvage프랑스어)』(1962년) 등에서 "야만(혼돈)"에서 정교한 질서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서구 중심주의에 대해, 혼돈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미개 사회"에서도 일정한 질서와 구조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 일침을 가했다. 이는 후대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서 특히 높이 평가받고 있다. 참고로, 『La pensée sauvage프랑스어』의 제목은 파스칼의 『팡세』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야생의 삼색 스미레"라는 의미도 있다.[2]

3. 2. 문화 상대주의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문화나라마다 다르긴 해도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고 야만적인 문화는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서구중심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서구의 오만과 편견을 깨는데 기여했다. 원주민의 과거 식인 풍습조차도 종교적 차원의 문화 현상으로 함부로 나쁘다고 매도할 수 없다고 했으며, 오히려 서구 근대 문명의 대규모 학살과 전쟁으로 빚어진 야만성과 잔인성을 비판했다. 또한, 그는 모든 사회관계나 사회적 행위는 우리가 사회를 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개념적 대립쌍들에 의해 구조화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 인간과 동물 등과 같이 개념적 대립쌍들을 통해 그 사회를 보면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パンセ・ソバージュ)』(1962년) 등에서 기존의 "야만(혼돈)"에서 정교한 질서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서구 중심주의에 대해, 혼돈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미개 사회"에서도 일정한 질서와 구조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 일침을 가했다. 이는 후대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서 특히 높이 평가받고 있다. 참고로, 『パンセ・ソバージュ La pensée sauvage』의 제목은 파스칼의 『팡세』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야생의 삼색 스미레"라는 의미도 있다.[2]

4. 비판과 논쟁

스탠리 다이아몬드는 레비스트로스의 트릭스터 이론에 대해 비판했다. 다이아몬드는 문명화된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만, 원시 문화에서는 이를 "존재의 조건이라는 단일 조건의 측면"으로 본다고 지적한다.[42] 그는 레비스트로스가 귀납적 추론이 아닌, "삶"과 "죽음"이라는 개념에서 거꾸로 추론하여 결론에 도달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코요테와 까마귀가 청소부 역할 외에도 사냥을 하는 맹금류라는 점, 곰과 같은 청소 동물이 트릭스터로 등장하지 않는 점, 거미나 사마귀와 같은 동물을 사용하는 다른 지역의 트릭스터 묘사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42]

에드먼드 리치는 레비스트로스의 글이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며, 독자들이 사기극을 의심하기도 한다고 썼다.[43] 사회학자 스타니슬라프 안드레츠키는 레비스트로스의 학문이 부주의하고, 그의 명성이 수학을 이용해 사람들을 위협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했다.[44] 포스트콜로니얼적 관점에서 티모시 로리는 레비스트로스가 지역 문화를 구제하려는 국가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한다고 주장했다.[45]

1962년 《야생의 사고》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비판하여 구조주의 사조가 각광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주체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주체 간의 구조가 중요하며,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다른 민족의 고유한 구조에 우열을 매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하시즈메 다이자부로에 따르면, 자크 데리다는 음성 중심주의(:en:Phonocentrism)에 반대하여 글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65] 이러한 관점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음운론을 인류학에 도입하고 글자가 사회 발생 이후에 생겼다는 후성설을 채택했기 때문에 데리다가 비판하는 로고스 중심주의자로 비춰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하시즈메 다이자부로는 레비스트로스와 데리다의 주장이 서로 맞물리지 않는 부분이 많고, 그들의 전문 분야가 반드시 모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사회인류학자 에드먼드 리치는 레비스트로스의 친족 연구를 비판했다. 그러나 오다 료는 리치가 “기본 구조”라는 용어의 의미와 “교환을 위한 교환”이 사회 생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5. 한국과의 관계 및 영향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한국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의 사상과 저작은 한국의 학계와 문화계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대표작인 《슬픈 열대》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며, 구조주의 인류학은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Levi's)의 창립자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와 성이 비슷하여 종종 관계가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66]

6. 저작 목록

레비스트로스의 저작 목록은 다음과 같다.


  • 1926년. 《그라쿠스 바베프와 공산주의》(Gracchus Babeuf et le communisme), L'églantine 출판.
  • 1948년. 《남비크와라 인디언의 가족 및 사회 생활》(La Vie familiale et sociale des Indiens Nambikwara), 파리: 벨기에 아메리카학회(Société des Américanistes) 출판.
  • 1949년. 《친족의 기본 구조》(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
  • * 《친족의 기본 구조》(The Elementary Structures of Kinship), J. H. 벨, J. R. 폰 슈투르머, R. 니덤 번역. 1969.[47]
  • 1952년. 《인종과 역사》(Race et histoire) (《현대 과학에서의 인종 문제》 시리즈의 일부). 유네스코(UNESCO).[48]
  • 1955년. "신화의 구조적 연구"(The Structural Study of Myth). 《미국 민속학 저널》(Journal of American Folklore) 68(270):428–44.[39]
  • 1955년.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
  • * 《쇠퇴하는 세계》(A World on the Wane), J. 와이트먼과 D. 와이트먼 번역. 1973.
  • 1958년. 《구조 인류학》(Anthropologie structurale)
  • * 《구조 인류학》(Structural Anthropology), C. 제이콥슨과 B. G. 셰프 번역. 1963.
  • 1962년. 《오늘날의 토테미즘》(Le Totemisme aujourdhui)
  • * 《토테미즘》(Totemism), R. 니덤 번역. 1963.
  • 1962년. 《야만의 사고》(La Pensée sauvage)
  • * 《야만인의 사고》(The Savage Mind). 1966.
  • 1964년–1971년. 《신화학》(Mythologiques) I–IV, J. 와이트먼과 D. 와이트먼 번역.
  • * 1964년. 《익힌 것과 날 것》(Le Cru et le cuit) (《익힌 것과 날 것》, 1969)
  • * 1966년. 《꿀에서 재로》(Du miel aux cendres) (《꿀에서 재로》(From Honey to Ashes), 1973)
  • * 1968년. 《식탁 예절의 기원》(L'Origine des manières de table) (《식탁 예절의 기원》(The Origin of Table Manners), 1978)
  • * 1971년. 《벌거벗은 인간》(L'Homme nu) (《벌거벗은 인간》(The Naked Man), 1981)
  • 1973년. 《구조 인류학 2》(Anthropologie structurale deux)
  • * 《구조 인류학 제2권》(Structural Anthropology, Vol. II), M. 레이튼 번역. 1976
  • 1972년. 《가면의 길》(La Voie des masques)
  • * 《가면의 길》(The Way of the Masks), S. 모델스키 번역. 1982.
  • 1978년. 《신화와 의미》(Myth and Meaning). 영국: 루트리지&키건 폴(Routledge & Kegan Paul).[49]
  • 1983년. 《먼 곳에서 바라보다》(Le Regard éloigné)
  • * 《먼 곳에서 바라보다》(The View from Afar), J. 노이그로셸과 P. 호스 번역. 1985.
  • 1984년. 《주어진 말》(Paroles donnés)
  • * 《인류학과 신화: 1951-1982 강의》(Anthropology and Myth: Lectures, 1951–1982), R. 윌리스 번역. 1987.
  • 1985년. 《질투하는 도공》(La Potière jalouse)
  • * 《질투하는 도공》(The Jealous Potter), B. 코리에 번역. 1988.
  • 1991년. 《스라소니 이야기》(Histoire de Lynx)
  • * 《스라소니 이야기》(The Story of Lynx), C. 티하니 번역. 1996.[50]
  • 1993년. 《보다, 듣다, 읽다》(Regarder, écouter, lire)
  • * 《보다, 듣다, 읽다》(Look, Listen, Read), B. 싱어 번역. 1997.
  • 1994년. 《브라질 그리움》(Saudades do Brasil). 파리: 플롱(Plon).
  • 1994년. 《고문받는 산타클로스》(Le Père Noël supplicié). 팽발마: 사블 에디시옹.
  • 2011년. 《인류학과 현대 세계의 문제》(L'Anthropologie face aux problèmes du monde moderne). 파리: 쇠유.
  • 2011년. 《달의 다른 면》(L'Autre face de la lune). 파리: 쇠유.
  •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 슬픈 열대》, 한길사
  • 《야생의 사고》, 한길사
  • 《신화학 1 - 날것과 익힌 것》, 한길사
  • 《신화학 2 - 꿀에서 재까지》, 한길사
  • 《보다 듣다 읽다》, 이매진
  •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아르테
  • 《달의 이면》, 문학과지성사
  • 《오늘날의 토테미즘》, 문학과지성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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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Lévi-Strauss http://dictionary.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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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웹사이트 Structuralism https://web.archive.[...] Dept. of Anthropology, University of Alabama 201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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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웹사이트 Claude Levi-Strauss http://www.onpointra[...] 2009-11
[9] 서적 Lévi-Strauss: A Biography John Wiley & Sons 2019-01-18
[10] 학술지 Claude Levi-Strauss: The Man and His Works https://digitalcommo[...] 1977
[11] 문서 Conversation with Jean José Marchand
[12] 문서 Wiseman, p. 6
[13] 서적
[14] 뉴스 Catherine Clément raconte le grand ethnologue qui fête ses 99 ans Le Journal du Dimanche 2007-11-25
[15] 서적 Lévi-Strauss: A Biography John Wiley & Sons 2019
[16] 웹사이트 Theology: Toward a Hidden God
[17] 서적 Lévi-Strauss: A Biography John Wiley & Son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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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학술지 Last Exit from Vichy France: The Martinique Escape Route and the Ambiguities of Emigration 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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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서적 Totems and Teachers: Key Figures in the History of Anthropology Rowman Altamira 2004
[24] 서적 Visions of Culture: An Introduction to Anthropological Theories and Theorists Rowman Altamir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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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서적 The Social Sciences as Sorcery Deutsch
[45] 논문 Epistemology as Politics and the Double-Bind of Border Thinking: Lévi-Strauss, Deleuze and Guattari, Mign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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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서적 The Elementary Structures of Kinship https://books.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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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서적 Myth and Meaning Routledge 2010-11-05
[50] 서적 The Story of Lynx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0-11-05
[51] 뉴스 Nécrologie: Claude Lévi-Strauss, anthropologue, père du structuralisme http://www.lemonde.f[...] Le Monde 2009-11-04
[52] 방송 100分de名著 レヴィ=ストロース 野生の思考 『「構造主義」の誕生』 NHK 2016-12-05
[53] 서적 建築という対話 僕はこうして家をつくる 筑摩書房
[54] 웹사이트 クロード・レヴィ=ストロースが100歳の誕生日 http://www.ambafranc[...] 在日フランス大使館 2017-03-01
[55] 문서 로버트 로위의 '미개사회'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언급
[56] 문서 레비스트로스와 페르낭 브로델의 관계
[57] 문서 레비스트로스와 그의 첫 번째 부인의 보로로족 연구
[58] 문서 레비스트로스와 관련된 인물들 (맥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등)
[59] 문서 레비스트로스와 한나 아렌트
[60] 문서 레비스트로스의 1942년 논문 "남미의 인디오에서의 전쟁과 교역"
[61] 문서 레비스트로스의 고등연구실습원 강의와 장 폴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 비판'
[62] 문서 미셸 르리스의 '인종과 문명'
[63] 문서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서문
[64] 서적 신화와 의미 미스즈 서방
[65] 서적 はじめての構造主義 講談社現代新書
[66] 간행물 新潮社
[67] 웹사이트 Claude LÉVI-STRAUSS http://www.academie-[...] Académie française 2020-04-13
[68] 서적 동서양고전의 이해 15장 레비스트로스,슬픈열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69] 서적 20세기 인물 100과 사전 숨비소리
[70] 서적 동서양고전의 이해 15장 레비스트로스,슬픈열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71] 서적 동서양고전의 이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72] 서적 새로 쓴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한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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